2009년 08월 19일
방학마지막날기념 포스팅,조선상고사:한 사학자가 우리에게 던져준 메세지

단재 신채호 선생,
한국 민족주의 사학의 대부이며,
민족분열,민족말살통치 시대,
조선사편수회,청구학회가
식민지조선인들의 완전일본인화를
시도할때,
조선인들의 정신을 바로잡아준
정신적지주중의
하나였다.
조선상고사
한국 민족주의 사학의 대부이며,
민족분열,민족말살통치 시대,
조선사편수회,청구학회가
식민지조선인들의 완전일본인화를
시도할때,
조선인들의 정신을 바로잡아준
정신적지주중의
하나였다.

사실 신채호 선생을 가장 존경하고 있으면서도 그의
저서는 단 한권도 읽은적이 없었고,학교 근현대사 시간에서도
근현대사 선생님이 항상 일제시대 식민지조선의 문화부분중
역사학 파트가 나오면 항상 몇번이고 신채호 선생과 그의 저서를
열내시며 강조하셨기 때문에 이번에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강조 안하셔도 전에도 신채호 선생의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하지만,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 사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저서의 내용도 어느 한쪽 관점으로 치우친 면이 있다.
그 부분이 우선 읽기가 꺼려졌던 것이다.
이게 전부다 망할 환단고기 때문이다.
고3이니 국사는 어느정도 기본은 공부해왔다고
생각했으나 환단고기는 내가 여태까지 정립했던 개념들을
날려버릴뻔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민족적 성향이 강한 역사책에 거부감을
느꼈었다.
그리고 드디어 조선상고사를 구입해서 읽기를 시작했다.
개떡같은 환단고기와는 달리
신채호 선생은 책의 처음구성을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사와 한국사의 연계성,
자신이 어떤 연구과정을 거치고 어떤자료를 참고해서
책을 쓰게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무리 민족적성향을 추구해도
거짓은 쓸수없다면서 당시 떠돌던 거북선이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주장,가림토 문자를 예로들어
이딴건 다 구라다,라며 왜 구라인지 증거를 들고, 극단적 민족주의사학을 경계했다.
앞으로 후배 사학자들이 역사를 연구할때 주의점같은 것을 서술함으로써
시작했다.이 부분을 읽음으로써 이 책이 '뭔가있어보임' 을 느꼈다.
압권인것은 신채호 선생은 김부식은 물론 공자,사마천,일연등
김부식은 대의명분과 합리로 밥먹고 사는 유가의 인간으로, 공자와 사마천은 역사를
쓰는자가 '춘추필법(중국역사서특유의 과장법)'이나 만들어서 그 꼴로 역사서 쓴다고 까주시고
일연의 삼국유사는 불교로 떡칠된 책이라고 까주셨다.
게다가 비슷한 성향의
학풍을 가진 안정복등의 저서에도 문제점을 지적하며 밟아 주셨다.
하지만 결국엔 "그나마 낫다"라고 평가 하셨지만.
책내용은 물론 환단고기와 비슷한점은 있다.하지만 환단고기는
논리는 개뿔이고,증거로 든것도 어디가면 구할수있는지 애매한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조선상고사는 달랐다.물론,신채호 선생의 이론중에 현재 이해 불가능하거나
증명불가능 한것도 잇었다.하지만,그것은 유적조사를 위한 자금의 한계.(실제로 책의 초반에서 "돈 1000원만 있으면 저 만주땅 고구려 무덤들을 다 조사해볼것인데......"라며 한탄했던 경험을 서술했다.)나
필요 사료의 부족,그리고 그가 증거로 사용했던 사료중 몇가지가 현재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환단고기의 증거물들도 소실되었다고 주장가능할지 모르겠으나,신채호 선생의 소실된 증거물은 소수에 불과하고 환단고기는 다수인데다가 증거제시가 되있지않은 이론이 더많다.)
책내용을 보다보면 김부식은 자신의 저서 '삼국사기'와 함께 정말 많이 까인다.
아마도 일제가 식민지정책을 펴는데 있어서 신라를 제외한 삼국의 역사가 조공의 역사이거나
다른나라에게 빌붙은내용이 많이 나오는 삼국사기는 한국인의 열등함을 주장하기에는 최적이었을것이다.
그래서 신채호선생이 삼국사기를 주로 비판한것이 아닌가싶다.
여러가지 쓸모없는 잡동사니들도 어떻게든 증거로 개조해서 써서 길가메시도 한국인이었다라고
주장하는 환단고기와 달리 조선상고사는 애매한 증거의 경우에는 가차없이 빼버린다.
그리고 만약 '길가메시가 우리일족이다'라는 명제가 있을시에 환단고기는 무슨수를 써서든
말도안되는 논리로 증명해낸다.하지만 조선상고사는 "이건 이러해서 우리민족이 아니다"고 하거나,
"지금은 밝혀내는게 불가능하다"라는 답을 내놓는다.아무리 민족적성향을 추구한다고 시차가 몇시간이나
차이나는 거리에있는 땅의 고대민족까지 없는증거가지 만들어내며 동일 민족화시키는,
마치 일제가 내선일체를 주장하는것과 같은 행위를 신채호 선생은 부정하고 과감히 버렸다.
조선상고사는 그런 책이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조선상고사에도 오류는 있다.(신채호 선생도 인간이니까)
그러나 단 한가지의 역사적사실 한줄을 증명하기위해 수많은 사료를 뒤지고 현지조사를 위해 중국을
밥먹듯이 드나들고,국내에서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결국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정도의(그리고 무국적자로 60년이 지나고 나서야 2009년 4월14일 대한민국 국적을 받음)
노력과 성품을 봐서라도 그정도 오류는 암묵적으로 독자 스스로 버리고 책을 보는 예의라도 보이는게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라고 본다.
저서는 단 한권도 읽은적이 없었고,학교 근현대사 시간에서도
근현대사 선생님이 항상 일제시대 식민지조선의 문화부분중
역사학 파트가 나오면 항상 몇번이고 신채호 선생과 그의 저서를
열내시며 강조하셨기 때문에 이번에 드디어 읽어보게 되었다.
선생님이 강조 안하셔도 전에도 신채호 선생의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다.하지만,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 사학자이기 때문에
그의 저서의 내용도 어느 한쪽 관점으로 치우친 면이 있다.
그 부분이 우선 읽기가 꺼려졌던 것이다.
이게 전부다 망할 환단고기 때문이다.
고3이니 국사는 어느정도 기본은 공부해왔다고
생각했으나 환단고기는 내가 여태까지 정립했던 개념들을
날려버릴뻔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민족적 성향이 강한 역사책에 거부감을
느꼈었다.
그리고 드디어 조선상고사를 구입해서 읽기를 시작했다.
개떡같은 환단고기와는 달리
신채호 선생은 책의 처음구성을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사와 한국사의 연계성,
자신이 어떤 연구과정을 거치고 어떤자료를 참고해서
책을 쓰게되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함께 아무리 민족적성향을 추구해도
거짓은 쓸수없다면서 당시 떠돌던 거북선이 최초의 철갑선이라는 주장,가림토 문자를 예로들어
이딴건 다 구라다,라며 왜 구라인지 증거를 들고, 극단적 민족주의사학을 경계했다.
앞으로 후배 사학자들이 역사를 연구할때 주의점같은 것을 서술함으로써
시작했다.이 부분을 읽음으로써 이 책이 '뭔가있어보임' 을 느꼈다.
압권인것은 신채호 선생은 김부식은 물론 공자,사마천,일연등
김부식은 대의명분과 합리로 밥먹고 사는 유가의 인간으로, 공자와 사마천은 역사를
쓰는자가 '춘추필법(중국역사서특유의 과장법)'이나 만들어서 그 꼴로 역사서 쓴다고 까주시고
일연의 삼국유사는 불교로 떡칠된 책이라고 까주셨다.
게다가 비슷한 성향의
학풍을 가진 안정복등의 저서에도 문제점을 지적하며 밟아 주셨다.
하지만 결국엔 "그나마 낫다"라고 평가 하셨지만.
책내용은 물론 환단고기와 비슷한점은 있다.하지만 환단고기는
논리는 개뿔이고,증거로 든것도 어디가면 구할수있는지 애매한게 대부분이다.
하지만 조선상고사는 달랐다.물론,신채호 선생의 이론중에 현재 이해 불가능하거나
증명불가능 한것도 잇었다.하지만,그것은 유적조사를 위한 자금의 한계.(실제로 책의 초반에서 "돈 1000원만 있으면 저 만주땅 고구려 무덤들을 다 조사해볼것인데......"라며 한탄했던 경험을 서술했다.)나
필요 사료의 부족,그리고 그가 증거로 사용했던 사료중 몇가지가 현재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환단고기의 증거물들도 소실되었다고 주장가능할지 모르겠으나,신채호 선생의 소실된 증거물은 소수에 불과하고 환단고기는 다수인데다가 증거제시가 되있지않은 이론이 더많다.)
책내용을 보다보면 김부식은 자신의 저서 '삼국사기'와 함께 정말 많이 까인다.
아마도 일제가 식민지정책을 펴는데 있어서 신라를 제외한 삼국의 역사가 조공의 역사이거나
다른나라에게 빌붙은내용이 많이 나오는 삼국사기는 한국인의 열등함을 주장하기에는 최적이었을것이다.
그래서 신채호선생이 삼국사기를 주로 비판한것이 아닌가싶다.
여러가지 쓸모없는 잡동사니들도 어떻게든 증거로 개조해서 써서 길가메시도 한국인이었다라고
주장하는 환단고기와 달리 조선상고사는 애매한 증거의 경우에는 가차없이 빼버린다.
그리고 만약 '길가메시가 우리일족이다'라는 명제가 있을시에 환단고기는 무슨수를 써서든
말도안되는 논리로 증명해낸다.하지만 조선상고사는 "이건 이러해서 우리민족이 아니다"고 하거나,
"지금은 밝혀내는게 불가능하다"라는 답을 내놓는다.아무리 민족적성향을 추구한다고 시차가 몇시간이나
차이나는 거리에있는 땅의 고대민족까지 없는증거가지 만들어내며 동일 민족화시키는,
마치 일제가 내선일체를 주장하는것과 같은 행위를 신채호 선생은 부정하고 과감히 버렸다.
조선상고사는 그런 책이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조선상고사에도 오류는 있다.(신채호 선생도 인간이니까)
그러나 단 한가지의 역사적사실 한줄을 증명하기위해 수많은 사료를 뒤지고 현지조사를 위해 중국을
밥먹듯이 드나들고,국내에서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결국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정도의(그리고 무국적자로 60년이 지나고 나서야 2009년 4월14일 대한민국 국적을 받음)
노력과 성품을 봐서라도 그정도 오류는 암묵적으로 독자 스스로 버리고 책을 보는 예의라도 보이는게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라고 본다.
# by | 2009/08/19 18:55 | history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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